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부처님의 자비의 가르침과 여성출가 비구니제도

by 지금 여기 깨어있기 2022. 7. 22.

부처님의 법은 참으로 미묘하다. 불교는 형식도 금하지만 그렇다고 형식적인 것은 아니다. 언제나 마음의 상태가 어떠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모두가 포기한 주리반특이나 손가락질받는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포기하지 않고 부처님은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셨다. 업장으로 무지한 우리의 때를 자상한 자비로 닦아 주고 지혜를 찾아주시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리고 차별받던 여성들의 출가를 허락하셨다.

 

지혜의 가르침

똥군 니다이 이야기 <니다이여, 내 손을 잡아라>

니다이는 출가촉천민으로 부처님께는 도저히 접근조차도 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물을 뒤집어쓴 니다이를 일으켜 손수 몸을 씻겨주셨다.

이것은 불가촉천민인 니다이의 사회적인 신분과 그로 말미암아 천대받는 고통을 불법으로써 정화해 주신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신분이 낮고 천대받아도 불법은 청정하고 평등해 그 모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보 주리반특 이야기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

부처님의 제자 중에 주리반특이라는 바보가 있었다. 부처님은 뛰어난 제자들에게 그의 학습을 당부했으나 그가 너무 바보여서 가르칠 수 없다고 포기하자 주리반특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를 본 부처님은 "너는 앞으로 마당을 쓸고 방을 닦으며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하고 외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리반특은 이렇게 간단한 글귀도 외우지 못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주리반특을 만날 때마다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라는 말을 해주도록 했다.

"본래 우리 인간의 마음은 청정한데 먼지나 때가 끼듯이 업장에 가려져 있다. 먼지를 털고 때를 닦듯이 업장을 없애면 우리의 본래 불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리반특은 청소를 하듯이 부지런히 마음을 닦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라훌라의 거짓말

라훌라는 12살 때 출가를 했다. 어린 라훌라는 장난기가 심해 간혹 작은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는 즐거워했다. 부처님께선 발을 씻은 더러운 물과 더러운 물을 담았던 그릇에 비유를 들어 "물은 본래 깨끗하지만 더러운 것을 씻으면 더러워지고 그릇은 본래 깨끗하지만 더러운 물을 담으면 더러워지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본래 청정하지만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더러워지고 더러운 마음이 담겨 있으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를 멀리하게 된다"라고 하시자 라훌라가 크게 깨달았다. 그 후 라훌라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되었다. 이것은 청소년의 교화 사례이다.

 

살인자 앙굴리말라 이야기 <부처님, 살인자를 구제해 주십시오>

앙굴리는 손가락, 말라는 염주라는 뜻이다. 앙굴리말라는 사람을 죽여서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니는 흉악범의 별명이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살인마 앙굴리말라를 교화하셨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머무르는데 그대는 머물지 못하는구나. 나는 언제나 머물러서 모든 생명의 은혜를 입고 있는데 너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꽃을 피우며 잠시도 머무르지 못하는구나" 이에 앙굴리말라는 제정신을 찾고 부처님 발밑에 엎드려 말했다. "부처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살인자를 구제해 주십시오" 앙굴리말라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은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 이미 그는 새로 태어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성난 시민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천안제일 아니룻다 이야기

아니룻다는 석가족 일곱 왕자 중의 한 명이다. 부처님께 수행자가 항상 깨어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졸아서 되겠느냐는 한 번의 지적을 받고 아니룻다는 그다음부터 잠을 안 자고 용맹정진을 하다 눈이 멀었다. 그러나 대신에 그는 천안통이 열렸다. 그리하여 아니룻다를 '천안제일'이라고 부른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당시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성 출가와 비구니 제도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 가장 차별받는 집단은 최하층 계급인 수드라였다. 그러나 실제로 더 차별받는 사람은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사회제도상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했고 독립된 인격으로 대우받지도 못했다.

석가족의 슈도다나 왕이 세상을 떠나자 마하프라자파티 부인은 부처님께 출가를 청했다. 부처님의 부인이었던 야소다라를 포함해 남편이 출가해 혼자 남은 여인 500명의 여인들도 출가를 신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두 차례 거절하고 바이샬리로 떠나버리셨다. 이들은 카필라바스투에서 바이샬리까지 멀고도 험한 길을 맨발로 부처님을 따라와 다시 출가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고,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서 여성 출가를 허락하셨다.

 

부처님은 여성 출가 자체를 부정하셨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인도 상황에 비추어 여성 출가자들이 겪게 될 어려움을 고려해 그 시기를 늦추신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500년이 못 되어 비구니 제도는 사라지고 만다. 인도 전통사상에 의하면 여자는 전륜성왕, 부처, 제석천왕, 범천왕이 될 수 없다는 오불가론이 제기되면서 여성 교단이 폐지되었다.

그러다 다시 비구니 제도와 함께 여성성불론이 제기 된 것은 대승불교가 일어난 다음이다. 한국 불교는 대승불교의 전옹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여성성불론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고 비구니 제도도 온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남방불교는 아직 비구니 제도가 없다. 그 때문에 남방불교 나라의 여성들은 불교를 여성 차별 종교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야말로 계급 해방의 선구자요, 여성 해방의 선구자였다.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음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와 비구니는 겉모습의 차이일 뿐, 법에 귀의해서 해탈의 길을 가는 데이는 아무 차이도 차별도 있을 수 없다. 해탈의 길에서는 남녀가 따로 있지 않고 승속이 따로 있지 않음을 부처님은 보여주신 것이다.

이리하여 불교 교단은 부처님을 교조로 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이 완성되었다.

<법륜스님 법문 중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