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위법 여몽환포용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 일체의 법은 꿈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 번개와 같다. 상을 취하지 않는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늘 상을 취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으므로 상대의 행동에 섭섭해하고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한다.
법을 전하는 사람은 어떤 상에도 머무름이 없어야 한다.
전법은 오직 상대가 어리석음을 깨치는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고 그 기쁨이야말로 내 삶을 가장 행복하고 기쁘게 만든다.
내가 상대를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해준다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 그 대가를 바라게 되고 바라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 더군다나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생각에 좋아 보이는 걸 해주면서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면 갈등은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다. 내 보기에 좋은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우리는 늘 상을 취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으므로 상대의 행동에 섭섭해하고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해준다는 상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 그 대가를 바라게 되고 바라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 섭섭하고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어날 때 아 내가 욕심을 냈구나, 내가 상대를 위해 해 줬다는 상을 지었구나, 그래서 자꾸 내 마음이 섭섭하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려야 한다. 상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했음을 알아차리면 섭섭함도 미움도 원망도 다 사라진다.
수행의 첫단계인 깨달음, 견성. 이치를 모른 채로는 아무리 열심히 행한다 해도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없다. 생활 속에서 연습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그 법은 내 삶을 바꾸는 힘이 되지 못한다. 내가 이럴 때 분별심이 생기는구나, 내가 여기에 걸리는구나 하고 자기 점검을 할 때라야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깨달은 바를 생활 속에서 실험하고 경험함으로써 나를 닦아가는 수행을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부딪치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순간순간 내 마음을 관찰해야 한다. 금강경을 읽고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나도 부처님 하시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서 다른 사람을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원력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가난하고 곤궁하다 해도 부처님보다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잡니다. 부처님께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달라고 조르는 사람에게서 부처님을 돕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한다. 도움을 청하는 자에서 보살피는 자로 거듭나야 한다.
누군가에게 댓가없이 도움을 주는 것
저 태양이 누구의 것도 아니니 누가 햇볕을 쪼여도 좋고 저 물은 누구의 것도 아니니 누가 마셔도 좋고 이 밥은 누구의 것도 아니니 배고픈 사람은 누가 먹어도 좋다. 이런 아무런 분별없는 상태에서 필요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이런 행, 발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입은 그냥 '아얏' 해주고 눈은 금방 찾아 주고 손은 금방 빼주고 이와 같이 아무런 바람도 댓가도 없는 행이 무위의 행이다. 적게 먹고 적게 쓰는 삶이 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법륜스님 금강경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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