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는 아라고 할 것이 없고 '아'라고 할 것이 없으면 집착할 바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집착할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존재가 변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오는 것입니다. 변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괴로움은 집착에서 생기므로 집착할 바가 없으면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일체개고
애별리고 -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은데 헤어질 때의 괴로움, 원증회고 -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기 싫은데 만나는 괴로움,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 자체는 괴로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연 현상입니다. 사물에 존재하는 법칙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집착할 바가 없어집니다.
우리의 인생이 고인 까닭은 제법이 무아이고 제행은 무상이며 일체는 고라는 이 진실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입니다. 즉 무지로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연하게 알게 되면 고는 그냥 사라집니다.
제법이 무아이고 제행이 무상인줄 깨달으면 모든 고가 사라지고 고요함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열반적정이라고 합니다.
연기적 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본래부터 있었거나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없습니다.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어서 결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떤 현상을 볼 때 이 현상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는가? 이렇게 현상의 원인을 규명해야 됩니다. 다시 그 원인을 또 하나의 현상으로 본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는가? 이렇게 해서 근본 원인을 탐구해야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현실은 괴로움입니다. 그러면 이 괴로움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는가? 이렇게 살펴봐야 합니다.
이렇게 규명해 갔을 때 열 두개의 고리로써 이 세상의 문제, 고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십이연기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과제를 고라고 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노병사 -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라고 합니다.
이 괴로움은 어디서 생겨났는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는가 할 때는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이런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이 생겨난 것입니다. 태어남이 없다면 이러한 괴로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태어남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는가? 태어남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수밖에 없는 어떤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태어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하나하나 규명해갔을 때 우리 고뇌의 근본 원인은 무명, 어리석음이라고 합니다.
윤회, 한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과거생과 현재생, 현재 생과 미래 생이 겹쳐 삼세가 서로 겹쳐 있다는 것이 삼세양중인과입니다. 노사라는 것은 삼생을 두고 인간이 윤회하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는 인도의 전통적인 윤회사상과 불교사상을 겹합시켜 불교를 설명한 방식입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고 한 생각이 사라니는 그 찰나 찰나를 설명한 것입니다. 수행적 관점에서 지금과 지금 이전, 지금 이후를 한 생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의 행위, 생각은 하나의 생과 같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곧 한 생입니다.
한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사라지느냐, 한 생각이 일어나서 어떻게 유지되고 어떻게 사라지느냐, 거기에 따라서 내가 어떻게 움직여지느냐, 이것을 규명해 둔 것입니다.
과거의 결과물로서의 현재가 있고 미래의 원인으로서의 현재가 있습니다. 즉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이것은 과거의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반응이고 그것은 또한 미래의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현재 나의 행위는 과거의 결과물이며 미래의 원인을 짓는 것이 동시에 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리되지 않고 겹쳐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결과물로서 현재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 되지만 미래의 원인이 되는 현재는 내가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물이고 미래의 원인이라고 할 때 이미 지은 과거의 것은 내가 받지만 새로운 씨앗은 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윤회의 꼬리를 끊는 도리가 나옵니다. 즉 고를 잘 분석하면 고의 소멸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고가 생겼을 때 그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를 규명하면 그 사고를 막을 방법을 찾을 수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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