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니 악인 옳으니 그린 분별을 해서 자기가 일으킨 생각으로 분별을 해놓고는 선은 선의 실체가 있고 악은 악의 실체가 저 밖에, 나 밖에 별도로 있다, 이렇게 생각을 지어 버리는 것을 상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가치라는 것은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거지 존재 물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상이 본래 없음을 탁 깨쳐버리면 집착하려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 내 마음이 일으킨 것입니다. 존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일체 상을 여위면 곧 청정하다
한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한 생각이 멸할 일도 없습니다. 부처를 밖에서 찾는다는데 마음이 원래 불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생각을 일으켜 갖가지 분별을 내는 망념에 집착하거나 말씀 또는 도에 집착하는 것 모두 세상에 굴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미혹한 사람은 몸은 미록 부동이나 입만 열면 곧 타인의 시비 장단과 허물을 말하며 도와 등지니 만약 마음에 집착하거나 청정에 집착한다면 도리어 도를 막는 것입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거나 상대의 어떤 점이 걸리는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모든 중생 다 그대로 부처될 수 있는 성품이 있습니다. 아무런 허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분별로 허물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실제는 생긴 그대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우리모두 아무 문제없습니다.
오분법신향이란
오분법신향이란 첫째 계향이니 자기 마음 가운데에 그름이 없고 악함이 없고 질투가 없고 탐냄과 성냄이 없으며 또한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없는 것이 계향이고 둘째는 정향이니 모든 선악 경께나 형상을 보고 자기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것이 정향입니다.
셋째는 혜향으로 자심이 걸림이 없어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비춰보아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비록 많은 선을 행하더라고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보살피며 외롭고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혜향입니다.
넷째는 해탈향으로 마음에 반연 하는 바가 없이 선도 생각하지 않으며 악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자재무애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으로 자심에 이미 선악에 반연하는 바가 없다 하더라도 공에 잠겨 고요를 지켜서는 아니 되니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야 하며 자기 본심을 알아서 모든 불법 이치에 통달하며 빛을 화하여 사물을 접하되 아도 없고 인도 없어 바로 보리에 이르러 참 성품에 변함이 없는 것이 해탈지견향입니다.
이 향은 각자 안에서 풍기는 것이므로 결코 밖을 향하여 찾지를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어리석음을 보면 바로 불성을 보게 된다
자성이 평등하면 중생이 바로 불이요, 자성이 헛되고 험하면 불이 바로 중생이니 우리의 마음이 험하고 굽으면 불이 곧 중생 속에 있는 것이요 한 생각 평등하고 곧으면 중생이 곧 성불입니다. 내 마음이 스스로 불에 있으니 자불이 참 부처입니다. 만약 자기에게 불심이 없다면 어디서 참 부처를 구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자심이 불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마라. 어리석은 자기를 깨닫는 게 해탈의 길이고 참 부처의 길이지 따로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중생의 어리석음을 떠나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리석음을 어리석은 줄 알 때 그게 바로 깨달음의 길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의 어리석음을 알면 불성을 보게 됩니다. 불법을 배운 것을 나에게 적용해야지 남에게 적용해 가르치려 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의 법은 늘 자기를 향해서 듣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큰 양식이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또 상을 지어서 남에게 들이댄다면 흉기가 됩니다. 이 좋은 법문이 새로운 흉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꼭 명심하고 정진을 해야 합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 속에서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마음을 숙이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내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 법륜스님 법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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